실로암

英, 탄소 배출 줄인 비결

3406 2021. 6. 3. 10:54

 

영국의 맥주 회사 브루독은 최근 양조장을 홉(맥주 원료) 농장이 있는 스코틀랜드 동부 엘런 근처로 옮겼다. 양조장까지 홉을 운반하느라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서란다. 맥주를 배달할 땐 전기 트럭을 이용하고, 양조장은 풍력에너지에서 만들어진 전력을 사용한다. 올 초 약 1000만평 규모의 땅을 사들였는데 이곳에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 예정이다. 지난달 인터뷰에서 마틴 디키(38) 창업자는 “어른들이 충분히 즐긴 지구와 우리 자연을 내 아들딸이 똑같이 즐기지 못하면 슬플 것 같아서”라고 했다. 이 같은 탄소 저감 계획으로 브루독은 기업이 배출하는 탄소보다 흡수하는 탄소가 두 배나 많은 세계 최초의 ‘탄소 네거티브’ 맥주 회사가 됐다.

 

영국엔 브루독 같은 기업들이 많다. 패션 브랜드 버버리는 작년 탄소 중립을 선언하고 이를 이행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아프가니스탄 염소 농가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염소 농가와 탄소 배출이 무슨 상관인가 싶지만, 더 적은 염소로 더 많은 캐시미어를 생산할 수 있도록 교육해 장기적으로 불필요한 탄소 배출량을 줄인다고 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단기적인 수치 대신 먼 미래를 내다본다는 말이다.

 

시민들은 친환경 제품을 선택하면서 탄소 저감에 동참한다. 시장에는 햄버거·커피·아이스크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탄소 중립’ 제품이 나와 있다. 일반 제품보다 10~20% 비싼데도 시민들은 기꺼이 선택해 지속 가능한 발전에 동참한다. 환경에 관심 많은 MZ 세대는 일부러 탄소 중립 식당을 다니며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에 ‘인증 사진’을 올린다.

 

국가 차원의 에너지 전략을 짜는 정부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섬나라 특성을 십분 활용해 풍력발전소 같은 친환경 발전소를 늘리는 게 주요 전략이지만 원자력발전소도 화력발전소의 대안으로 여긴다. 올 초 보리스 존슨 총리는 2050년 탄소 제로를 위한 정부 정책 10가지를 발표하면서 “소형 원자로뿐 아니라 대규모 원자력 발전소까지 새로운 원자력 계획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잉글랜드 동부 해안가에 3.2기가와트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원자력발전소를 새로 짓는 계획을 공개하고 현재 주민 공청회를 진행하고 있다. 영국은 정부·기업·시민이 모두 동참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7억9380만t에서 2018년 4억5150만t으로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2050년까지 배출량 제로를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는 동안 우리는 1990년 2억9220만t에서 2018년 7억2760만t으로 2.5배 늘었다. 탄소 중립을 위한 길이라며 멀쩡한 나무를 베어 내는 정부, 환경에 그다지 관심 없는 기업과 시민들을 보면서 우리 정부가 내세운 ’2050 탄소 중립' 구호가 허망하게 들렸다.

런던=이해인 특파원 2021.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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