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 집권 세력의 표리부동과 허위의식을 꼬집는 한국 대중의 촌철살인이다. 온라인 국어사전엔 이미 올라갔다. 웹스터 영어사전에 등재될 가능성도 있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는 ‘naeronambul’을 한국 정치를 읽는 중요한 키워드로 제시한 바 있다.
내로남불에 딱 들어맞는 영어식 표현은 무엇일까? 한평생 시를 써온 60대 중반 미국인 은사께 여쭸다. 은사께선 온종일 생각해 보았지만 ‘자기 편의적 위선(self-serving hypocrisy)’ 정도밖엔 안 떠오른다 하셨다. “영어의 어떤 단어도 내로남불만큼 날카롭게 정치인의 표리부동을 꼬집지 못한다”며 “앞으로 ‘내로남불링(naeronambuling)’하는 ‘내로남불리시(naeronambulish)’한 녀석을 보면 ‘내로남불러(naeronambuler)’라 부르겠다!” 하셨다. 시인의 위트에 웃음을 터뜨리면서 이 단어가 영어권 정치학 교과서에 실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실제로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선거구 변경), 필리버스터(filibuster·의사 진행 방해), 머드슬링잉(mudslinging·흑색선전), 머크레이킹(muckraking·사생활 캐기) 등 영미에서 흔히 쓰는 정치 용어는 모두 내로남불처럼 구체적 정치 상황에서 인구에 회자됐던 풍자와 해학의 신조어였다. 내로남불은 더 널리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그 한마디에 근현대 정치사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집약돼 있기 때문이다. (중략)
지난 4년 대한민국의 집권 세력은 내로남불을 일삼아 왔다. 집권 세력 개개인의 사적 일탈보다 더 큰 문제는 자기편 내로남불러들은 무조건 다 감싸주는 대통령의 내로남불링이다. 부족민의 상처를 핥아주는 부족장, 대자(代子)를 안아주는 마피아의 대부(代父), 꼬붕의 뒷배를 봐주는 오야붕의 모습과 과연 다른가? 어떻게 대한민국의 집권 세력이 그토록 내로남불리시할 수 있나?
자신들만 민주 세력이라 믿는 허황된 선민의식, 스스로 ‘진보적’이라 여기는 오도된 자기 확신, 적대 세력과 사생결단한다는 낡은 운동권의 망념 때문이다. 마피아적 집단주의, 파당적 진영 논리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현 집권 세력의 상습적 내로남불링은 ‘법 앞의 평등’을 훼손하는 반민주적 헌법 짓밟기다. 특히 통치자의 내로남불링은 법률을 도구 삼아 법치를 파괴하는 노골적 독재 행위다. 대한민국은 그들만의 부족국가가 아니다. 법의 지배를 받는 잘 발달된 자유민주주의 국민국가다.
어쩌다 ‘naeronambul’이 K정치의 키워드가 됐나? 해결책은 단 하나, 민주공화국의 시민들이 나서서 ‘내로남불 정권’을 무너뜨리고 공명정대한 ‘내불남불 정권’을 세우는 길밖에 없다. 그래야만 ‘naeronambul’이 국제정치학 교과서에 실릴 때 법치 재건의 아름다운 고사로 기록될 수 있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2021.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