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암

책임 안지는 국정' 文정부 적폐(1)

3406 2022. 1. 22. 11:50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핵심 지지 집단 내에서 ‘배신자’ 소리를 들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반미(反美)면 어떠냐”던 사람이 미국 요청을 받아들여 이라크 파병(派兵)을 결정하고, 제주도 남쪽 강정마을에 남중국해를 염두에 둔 해군기지를 짓기로 했을 때 친여 세력의 궐기가 하늘을 찔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추진하면서는 스스로를 ‘좌파 신자유주의자’로 선언하면서까지 여권 내 반대론자들과 악전고투했다.

 

그를 향한 ‘변절자’ 공격은 임기 마지막 해까지 이어졌다. 국민연금 개혁을 밀어붙인 탓이 컸다. 가입자들이 낸 돈보다 훨씬 많이 받도록 설계된 데 따른 조기 재원(財源) 고갈 문제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G5’로 불리는 연금 선발국가(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평균(20.2%)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보험료율(9%)을 15.9%로 끌어올리고,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급액)을 60%에서 50%로 낮추는 게 핵심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2047년께 국민연금이 바닥나고 말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여당 내에서부터 반대가 거셌다. “더 많은 부담, 더 적은 혜택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복지정책”(노동자연대)이라는 등 핵심 정권 지지 세력의 완강한 저항에 목덜미를 잡힌 결과였다.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연금 구조는 진보·보수를 떠나 나쁜 제도다. 후세대를 착취하는 연금이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다.

 

노 대통령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보험료율 인상을 포기하는 대신 소득대체율을 40%로 더 낮췄다. 더 내지 않겠다면 받는 금액을 더 줄이자는 수정안을 관철시킨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국민연금 고갈 예상 연도를 2060년으로 10여 년 늦췄다. 노 대통령이 중요 국사(國事)에서 ‘배신자’ 소리 듣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그게 국정 최종책임자의 도리라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 철학자 막스 베버의 말마따나 올바른 국가지도자라면 개인의 ‘심정윤리’가 아니라 정치가로서의 ‘책임윤리’를 따라야 함을 고뇌한 결과가 아닐까.

이학영 논설고문 haky@hankyung.com 202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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