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주인에게 항의하자 가게를 넘겨줄 테니 빚을 갚아 달라고 했다. 그가 빚더미의 가게를 물려받았다는 소문이 나자 자녀들 혼수를 장만하려던 교포들이 몰려들었다. 민단에서의 그의 희생적인 친절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쓰러져 가던 가게가 대리점으로 승격했고 나중에는 엘리베이터까지 납품하는 큰 회사로 성장했다.
그러다 그에게 불치병이 찾아왔다. 절에 갔더니 스님이 벌떡 일어나 “두 손 가득 보물을 꽉 쥐고 있군요. 한쪽 손을 쥐면 한쪽 손은 펴세요.” 한 손을 펴고 있어야 넘어져도 편 손으로 땅을 짚을 수 있고, 더 좋은 것이 다가오면 잡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무명의 이우환씨가 유럽에 가려고 500만엔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그는 선뜻 700만엔을 건넸다. 성공리에 유럽 전시를 마친 이우환이 그림 13점을 보내왔다. 지금 한 점당 수십억원의 그림이란다. 그렇게 화가들이 자신처럼 가난 때문에 미술을 포기하지 않도록 돕다 보니 1만 점의 그림이 쌓이더란다.
수천억원의 재산을 내놓을 만큼 부를 쌓았음에도 30대 때 살던 집에서 아직까지 살고 있다는 그의 집을 나는 방문한다. 부러진 이를 가지런히 만들 수도 있건만 그 삐뚤빼뚤한 이야말로 삶의 자부심이라던 그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그만큼 돈을 잘 아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대통령이 되어도 막강한 권력을 두 손 가득 움켜만 쥐려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한심한 사람들이 한둘이던가. 두 손에 움켜쥔 돈도 권력도 한 손만은 활짝 펼 수 있다면! 좀처럼 털어놓지 않았던 이야기를 장시간 들어주어 고맙다며 환하게 웃던 83세의 그가 벌써 그리워진다. 사이타마! 30대의 그와 80대의 그가 함께 사는 그곳에서 나는 또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고 싶은 것일까?
윤학 변호사 220401 사회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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